믿음의 영웅들의 삶(Ⅱ) (히11:13~16)
Ⅰ. 그들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었다(13상)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했다.
Ⅱ. 그들은 본향 찾는 나그네 정신으로 살았다(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했다.
Ⅲ. 그들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전진하는 살았다(15~16상)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했다.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떠나 온 본향으로 되돌아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시험과 핍박에 직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버리고,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가졌던 1차 독자인 히브리 출신의 성도들(히10:38,39)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나온 바 본향” 은 “더 나은 본향” 과 대조를 이루는데 “나온 바 본향” 은 이 세상의 고국이나 고향을 말한다. 이것은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가기 위해 떠났던 육신이 태어난 지상의 고향을 가리킨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들이 다시 돌아갈 기회를 향상 가지고 있었다’ 이다. 숱한 어려움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할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수시로 강하게 손짓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복된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소망 중에 믿음으로 전진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 1세대가 광야에서 보였던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늘에서 만나를 주신 것에 싫증을 내고, 불평하며 애굽에서 종노릇하면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떠나 온 애굽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위시한 믿음의 영웅들은 한 번 출발한 후에 되돌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땅에 묻었으며 자신 역시 그 곳에서 장사되었다(창23:19,25:9-10). 이삭이나(창35:27-29) 야곱도(창49:29-33,50:13) 가나안에서 장사되었다. 그들이 이 땅에서 고향을 찾았다면, 자신들이 태어난 지상의 고향으로 충분히 돌아갔을 것이다(Bruce).
성도가 뒤돌아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며, 불행한 일이다. 히10:39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9:62) 하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죄의 종으로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신앙의 자리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신앙의 경주에서 후퇴는 용납되지 않는다. 오직 앞만 보고, 전진해야 한다. 그래서 히12:2상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물러서지 말고, 오직 전진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경주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전진함으로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길 바란다.
성도들의 본향은 어디인가? 그 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시고, 복 주시고, 약속하신 신령한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은 날마다 성숙하고, 성장하고, 향상되고, 전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란다.
Ⅳ. 그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에 미련과 소망을 두지 말고, 오로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한다. 왜냐하면,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이 땅에 머무는 기간은 심히 짧아서 이사야는 그것을 들의 풀과 꽃에 비유했고(사40:6~8) 야고보는 안개(약4:14)로 묘사했다. 베틀의 북처럼(욥7:6), 또한 날아가는 것처럼(시90:10) 신속히 날아가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날들이다. 성도는 본향을 갈망하는 순례자이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목적이 분명한 순례자이다. 성도는 거룩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이다. 기독교의 역사가 순례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고향을 떠나서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정처없이 나아갔다. 그리고 장막생활을 하며,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순례자의 삶이었다. 또한 모세의 40년 광야생활 또한 순례자의 길이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긴 순례자의 역사이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나그네 정신, 즉 순례자의 정신으로 살아 가야 한다. 우리 성도는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은 영어로 “The Pilgrim,s Progress” 말고 하는데 이는 “순례자의 진로” 라는 뜻이다. 이 책은 성도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에 웅덩이와 높은 산과 여러 가지 괴로운 일과 시험을 당하나 끝까지 싸우며 믿음으로 나갔다는 기록이다. 참으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본향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순례자이다. 그 본향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한 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하여 친히 성을 만드시고, 예비하셨다. 그런데 이 “성” 은 “장막”(9절)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를 가리킨다. 이 성은 그리스도께서 자가를 쫓는 성도를 위하여 예비하셨다. 요14:2,3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는 중에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눅16:19~31) 그 곳은 지옥의 반대편으로 천사들이 거하는 곳이며, 위로 받는 곳이다. 이 성은 순례를 마친 성도들이 위로를 받으며, 안식하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 성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를 위해 예비하셨으며, 이 성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들어간다(갈3:7)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 인생이 천국가기 위한 준비 과정인줄 알고, 그 곳에 들어 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의 영웅들처럼 살아 가시길 바란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시고, 환영하며 나그네 정신으로 살아 가시길 바란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들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닌 줄 알고, 외국인과 같이 살고,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라. 이런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한 성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신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즐겁게 행복하게 살게 될 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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