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성도는 예배를 최고의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했다.
Ⅱ. 성도는 감사함으로 예배해야 한다(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했다.
Ⅲ.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는 자의 기도
①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해야 한다(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했다. 다윗은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했다. 하나님의 평안이 성전에 가득하길 기도했다. 하나님의 구원 받은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평안을 기도해야 된다. 그러면 형통이 임하게 된다. 다윗은 예루살렘과 그 성에 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다. 성전은 상징적인 의미로 교회를 말한다.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교회를 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주의 백성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기쁨으로 일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 교회에 큰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복이 넘치기를 기원한다. 그러니까 “성전” 이 교회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이다(히12:22). 이 “하늘의 예루살렘” 이라는 것은 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다. 이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하는 것은 교회와 천군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또는 그의 자녀들이라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 즉 교회이다. 우리 모두가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포함된 교회로서 우리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러한 모습을 내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예루살렘”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의 한 사람으로 삼아 주셨다.
교회가 바로 서고, 부흥하려고 하면, 교회가 평안해야 한다. 행9:31에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고 말씀했다.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일하는 자이다. 왜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야 되나?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복이 너무나 크고 귀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은혜는 단순히 자신들의 것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성령의 생수이다. 이 세상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져 버린다. 행20:32에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하셨다. 바울은 흉악한 이리들과 배교의 여러 세력들로 인해 갖가지 공격을 받게 될 교회의 어려움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안전의 원천을 알았으니 곧, 주와 그분의 말씀이었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누구의 교회이며, 무엇으로 교회가 거룩하게 서 갈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집에 나와 예배드리며 은혜 받고, 말씀의 능력을 공급받으면, 어떤 악조건도 이기고, 어떤 장애물도 뛰어 넘는다. 평안이 능력이요, 경쟁력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 성도 여러분!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삶을 사시길 바란다.
②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복(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했다. 이는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평안을 구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을 보여 준다.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평안을 기도하라. 그리하면,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든 백성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해야 나라가 평안하다. 우리는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평안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가정의 평안도 없다. 교회가 평안해야 나라도 평안하다.
③형제와 친구의 평안을 기도해야 한다(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했다. 7절에서는 “네 성안” 과 “네 궁중” 과 같은 건물을 들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의 평안을 간구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내 형제” 와 “친구” 를 직접 거론하며 평안을 구한다. 이와 같은 계속적인 간구는 이타적인 은혜 받은 성도의 모습이다. 본 시편 기자는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형제들, 즉 총체적 의미의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평안을 원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성의 평안을 소원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동시에 품었을 때 예루살렘 성의 안녕을 원하는 애틋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은혜 받은 성도는 자신의 평안만, 내 가정의 평안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 친구, 친척, 민족,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다.
④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했다. 8절에서는 “내 형제” 와 “친구” 를 위하여 기도했지만, 여기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 을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이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내 형제” 와 “친구” 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 을 구성하는 일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내가 너의 선함을 찾을 것이다’ 이며 ‘내가 너의 유익을 위하여 중보기도 할 것이다’(40:16), 혹은 ‘내가 너의 안녕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신23:6)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래서 다윗 왕 때에 다른 왕 때보다 나라가 평안하고, 가정과 자손들이 잘되고, 나라가 견고하게 되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집, 교회를 사랑하라.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하는 일들이 잘되고, 자손들이 형통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오늘날 구원 받은 공동체인 교회를 의미하며, 또한 우리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소망해야할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이런 까닭에 모든 성도는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의 평안과 형통과 부흥을 위하여 힘쓰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또한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길을 떠난 순례자이다. 순례자의 길이 힘들고, 고단한 여정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과 찬양을 할 때를 기대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의 백성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기쁨으로 일할 때,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 교회에 큰 복을 내리시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이런 복을 받고, 나아가서 우리 교회에 이러한 복이 넘치도록 기도하시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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