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전야(前夜), 이것부터 바꿉시다- [2] 퇴폐·음란 문화
사회에 만연한 퇴폐 풍조, 교회가 나서야
- ▲1920년대 절제 가두 캠페인 모습.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제공
초기 한국교회가 술을 금한 이유는 또 있었다. 술은 여자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음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 여러 병폐들을 내버려 두고 내 성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를 고쳐 나가고자 했다.
1백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담했다. 당시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했고, 어떠한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축첩(畜妾)이었다. 당시는 여러 첩을 두는 것이 허용됐을 뿐 아니라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축첩 제도 폐지에 노력한 기독교
당시 선교사들은 첩 문제가 한국의 여러 가정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엄격하게 이를 금지하는 법을 적용하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부일처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단순히 일부일처제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해결 방안들을 제시했다. 그 방안들은 첫째, 첩을 데리고 살거나 다른 여자와 함께 지내는 것을 정욕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하나님을 바로 믿으라고 권면했다. 둘째, 술을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술로 인해 생겨나는 정욕의 문제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셋째, 남성들에게 정결을 회복하고 가정을 사랑하도록 교육했다.
당시 조선사회에는 조혼 풍습으로 인해, 강제혼, 거래혼 등이 빈번했고 여성은 교육기회와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이를 방지하고자 강제혼 금지, 남녀의 교육 기회 평등, 혼인시기 제정 등을 주장했다.
공창 제도 폐지 촉구한 기독교
한일합병(1910) 이후 일제는 한국 내 공창(公娼)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한국 내 일본 군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도시마다 생겨난 공창은 한국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이에 한국교회는 절제운동을 통해 정면으로 맞섰다. 초기부터 첩 문화에 제동을 걸었던 경험이 있던 한국교회는 매춘 문화에도 강력히 대응할 준비를 갖춰 나갔다.
절제운동의 시작은 개인의 내면이었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문제인 축첩, 공창의 문제를 내면적인 회개, 탐심의 근절로 해결하려 했다. 또 192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공창폐지 운동을 벌여 나갔다. 일제에 의해 들어오는 퇴폐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한국교회는 폐창을 위한 법률적 제도 마련, 공창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부모 교육, 공창에서 탈출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제책 마련에 적극 나서며 공창폐지를 주장했다. 퇴폐문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물론이었다.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선교 1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내 기독교인의 비율은 20%가 넘는다지만 퇴폐?음란문화들은 1백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더욱 심각해졌다. TV나 영화 등의 대중매체는 성 상품화를 부추기고 있고, 인터넷의 발달은 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다.
현재 청소년들은 인터넷 등을 통한 음란물 접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상태다. 여가수들은 노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영화나 대중가요는 동성애를 미화하고 있으며, 각종 진보적 언론 매체들은 인권을 내세워 성전환자들을 사회에서 허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 파괴 현상도 1백년 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두 쌍 중 한 쌍이 경험하고 있다는 이혼 문제는 1백년 전 축첩이나 조혼 문제보다 훨씬 큰 가정 파괴를 낳고 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의 정신적 상처는 이 사회에 잠재적 문제 요소가 된다.
지킬 것은 지킨다
무너진 성 의식도 심각하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대생 10명 중 7명이 혼전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답변했고, 대학생들의 45.5%가 하룻밤 만남을 통해 관계를 갖는 ‘원나잇 스탠드’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구시대적 언어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모든 사회 현상들에 기독교인들이 명확한 가치관을 갖고 있지 못해 1백년 전과 같은 대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성경은 십계명 등 여러 곳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혼전순결은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 땅에 떨어진 성 의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이를 지키지 않고 결혼했을 때 맞게 될 여러 갈등 상황들을 방지해 가정 파괴를 막을 수 있다. 낙태나 미혼모, 청소년 성 문제도 사실 혼전순결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 볼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사실 ‘혼전순결’을 마음 속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음란?퇴폐 문화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1백년 전 믿음의 선배들이 싸웠던 것처럼, 평양대부흥 재현을 바라는 기독교인들도 먼저 가장 기본적인 ‘혼전순결’의 중요성부터 주위에 알려 나가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의 ‘전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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