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과 교회설립(Ⅰ)(마16:13~20)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구원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Ⅰ.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질문
1)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다. 여기서 “인자” 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 즐겨 표현하신 말씀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 라 표현하신 데에는 인자라는 용어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보여 준다.
①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격과 성품을 가지신 분이다(요5:26)
②예수님은 구원자이신 메시야이시다(21절)
세상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좋은 분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바로 아는 것이 신앙생활에 능력이 된다. 그 당시 사람이 언급한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들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구원받아야 할 대상을 구세주와 같은 레벨에 놓는 것은 신앙생활에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구원자가 아니고, 하나의 구도자였다. 그들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이다.
오늘날도 한 분, 예수님에 대한 평가가 일치되지 못하고, 다양하다. 혹자는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 혹자는 탁월한 종교지도자, 혹자는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해방자, 어떤 사람은 혁명가로 생각한다. 성도 여러분! 나는 과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는가?
2)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들의 소망과 욕구에 따라 자신들의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았지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의미이다. 즉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 너희는 나를 어떤 존재로 알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제자들에게 던지신 것이다. 성도는 불신자와는 달리 예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겉으로 들어난 눈에 보이는 이적 기사에만 놀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들의 구원자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야 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주저함이 없이 담대하게 신앙고백을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인간적 열성을 앞세움으로 계속 실패했으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오순절 이후에는 제자들 가운데서 항상 앞장서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며(행2:14)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역할을 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는 주 예수님에 대한 고백 중 가장 완벽한것 가운데 하나로서 기독교 신조(信條)의 핵심을 이룬다. 베드로의 고백은 정확한 고백으로 유대인들이 고대했던 진정한 메시야가 다른 분이 아닌 바로 예수님이심을 확신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 는 ‘기름부음 받은 자’ 란 뜻이다. 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종이심을 나타낸다. 이는 그분의 인성(人性)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 왕, 선지자 임명시에 시행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권능의 지위와 그것을 행할 권리를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왕,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실 하나님의 권능의 지위와 권리를 위임 받으신 참 구원자이심을 나타낸다.
실로 이런 표현은 오직 영원 자존하시는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는 과거와 더불어 현재, 미래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탁월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은 그분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말로서 그분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으신 분이요, 하나님과 하나 되신 하나님의 본체 등을 나타낸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란 표현은 이방의 죽은 신들과는 대조되는 표현으로, 하나님은 스스로 영원 자존하시며 생명을 부여하시는 생명의 근원(민27:16)이심과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역사하시는 분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 이상, 즉 하나님으로 알고, 고백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의 믿음은 성립된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고, 순종하며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신앙고백을 하자.
Ⅱ. 베드로의 대답과 예수님의 축복(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요나 시몬아” 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말이다. “시몬” 은 베드로의 본명인데 이처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본명을 부르신 것, 즉 새 이름인 “베드로”(요1:42)라 부르시지 않고 “바요나 시몬아” 라고 부르신 것은 뒤의 말씀과 연관시켜 볼 때 매우 의미가 크다. 이는 친밀성과 더불어 베드로의 유대인의 혈통적 신분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는 신약에서 유일회적(唯一回的)으로 한 개인에게 국한시켜 사용된 이 말은 칭찬의 정도를 뛰어 넘는 탁월한 하나님의 복의 선언이다. 이 복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하늘나라에 참여한 자가 누리는 기쁨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베드로에게 알도록 계시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결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오로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실 때만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 의 계시로 말미암음이다. 우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이다.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에는 고백이 있다. 죽은 종교는 고백도, 교제도 없다. 우상 종교 신상에는 고백해도 반응이 없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가 믿는 주님께 마음껏 고백하라. “하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구주 나의 생명입니다” 주님께 합당한 고백을 함으로 칭찬받고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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