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18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즉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형태의 화석인류로서 학계로부터 관심을 모았던 이른바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이 최고의 과학사기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류기원을 둘러싼 완전범죄에 가까운 이 과학사기 사건의 출발은 191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해 12월18일 오후 8시 영국 런던의 벌링턴 하우스. 지질학회가 열렸던 그날,런던 남부 서식스 지방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지질학자인 찰스 도슨(Charles Dawson)은 필트다운 마을 근처에서 새로운 화석인류를 발견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공동탐사에 들어간 대영박물관 지질학 분야 관리자였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는 이 화석인류가 인류의 직접적 조상으로 여기는 네안데르탈인에 버금갈 만큼 오래됐고 그보다 인류에 가까운 직계조상이라고 서둘러 확정했다.
그는 이 화석의 발견자 이름을 따서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Eoanthropus Dawsoni)라는 그럴듯한 학명까지 지어주었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조상이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로서 인류 기원의 도표가 바뀌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열광한 사람들은 당연히 인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 조상이 바로 ‘최초의 영국인’이라는 이 발견에 영국인들은 인류학적 위대함까지 느꼈다는 것이 당시 학자들의 전언이다. 그동안 크로마뇽인이나 네안데르탈인 등 인류의 계보에 등장하는 화석들은 대륙에서 발견됐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에 영국인들은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 속에서 필트다운인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찬란히 모셔져 40년 동안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 쪽에서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다. 수백 편에 달하는 논문이 쏟아지면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트다운인에 대한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참과 거짓이란 명제의 논란 속에서 필트다운인의 영광은 1953년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됐다.
그해 대영박물관 연구원이었던 케네스 오클리(Kenneth Oakley)와 옥스퍼드대 생리학자 조셉 시드니 위너(Joseph Sydney Weiner)가 불소를 이용한 새로운 연대측정법으로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돼온 필트다운인에 대한 연대를 정확히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필트다운인은 완전히 사기임이 드러났다.
두개골은 극히 최근에 죽은 사람의 뼈였고 턱뼈 또한 죽은 오랑우탄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턱뼈의 양끝부분이 해부학적 모순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절단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람의 턱뼈라는 확신을 주었던 마모된 어금니는 인위적으로 줄질된 것이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필트다운인의 모든 뼈가 오래된 화석처럼 보이게끔 하고자 중크롬산염으로 처리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웃지못할 사실은 또 있다. 필트다운인과 함께 발견된 10종의 동물화석 가운데 그동안 영국에서 발견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함께 발견된 하마의 어금니는 불행하게도 몰타에서 온 것이고,코끼리의 이빨은 엉뚱하게도 튀니지에서 온 것이었다.
이쯤되면 ‘인류 최초 조상은 영국인’이란 영광의 월계관을 썼던 영국인의 자존심에 미친 상처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게 됐다. 영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관심은 누가 이런 대담한 과학사기극을 벌였는가에 쏠려 있다.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선사학 연구소 부소장인 에르베르 토마스(Herbert Thomas)는 자신의 저서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필트다운’(에코리브르 간)에서 범인 찾기를 위한 추리게임을 벌이고 있다.
학계는 당초 발견자인 찰스 도슨이 혼자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완벽한 시기에,완벽한 장소에,완벽한 증거물을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질학과 해부학,고생물학 등에 박식하며 전 세계 각국에서 희귀한 화석 뼈들을 수집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과학사가,인류학자,고고학 전문가 등 총 30명이 넘는 공범이 계획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론하고 있다. 문제는 한때 필트다운인이 원숭이와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 형태의 화석인류로 각광 받았다는 점이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귓전을 울린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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